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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택 죽음 (걷고 읽고 쓰고 113일차)

by 그레이 맥 2022.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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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삶의 끝은 어떻기를 바라나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을 산사람은 아버지 친구였습니다. 

왼쪽 모습이 죽기 몇일전의 미소입니다. 

아빠의 친구이자 2대째 목사인 친구는 췌장암이었고 61세의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빠는 친한친구가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자 살아생전 보는게 낮겠다 싶어서 찾아갔습니다. 

친구는 마지막을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두자녀는 시집 장가를 갔고 손주 손녀를 보았으며 아들은 자신의 대를 이어 3대째 목사가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는 자신이 죽어도 월 300만원정도의 연금과 보험금이 나온다고 합니다. 

여한없이 살았고 행복했으며 이제가도 후회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기도하고 떠나는 우리 아빠에게

친구는 "또보자"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정말 어딘가에서 또 볼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그리고 몇일 후 다시 아빠와 장례식을 참석했습니다. 

우는 사람은 없었고 아쉬움도 없었으며 

여행왔다가 돌아가신이를 기억하는 자리같았습니다. 

이번에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릴때 내 아버진 집을 나갔었고 그래도 명절이라고 어머니는 큰집을 갔습니다. 

큰아버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한번도 나무란적 없었고 6살때 함께 낚시터도 가고 오토바이타고 시내 마실도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게는 자상했지만 상을 치루며 두 자녀에게 물어봤더니 큰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답니다. 

아쉽게도 몇년동안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큰아들이 달려가 마지막을 지켰습니다. 

저에게는 자상한 큰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에게는 너무 엄격하셨었습니다. 

아들이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자 떳던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의식이 없다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 우리 아빠가 가서 보고 1시간 만에 임종하셨습니다. 

아들과 딸은 아빠와 추억이 없다고 합니다.

이쁜 옷한번 사준적 없고 그흔한 치킨한마리 사다준적이 없다고 합니다. 

평생을 목사로 선교하고 말씀전하는데 헌신 했지만 정작 자녀들에게는 말씀이전해지고 선교되지 못했습니다. 

엊그제 집을 들어가는 휴게소에서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선물 사다 주세요.

다행이도 휴게소 편의점에 아가들에게 줄 수 있는 티니핑 시계가 있었고 받으면 행복해할 딸을 생각하니 내가 먼저 행복했습니다. 

어제는 부산을 갔다가 맛있는 고래사 어묵집에서 점심을 먹고 포장 제품이 있어서 아내를 위해 떡볶이를 삿습니다.

저는 마지막 한숨 내쉴때 사랑하는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 그리고 아내가 있는 앞에서 "그동안 고마웠고 참 재밋는 여행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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